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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선거 ① 경마장에 뛰어 들어간 여성의 정체는? | 시민의 품격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집니다. 그런데 2024년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선거가 치러지는 게 아닙니다. 70여개 국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가 진행되는데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42억 명이 투표를 하는,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합니다. 유럽 의회 선거에다 11월에는 미국 대선도 있어서 세계 정세에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세계 정세는 물론 '나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선거
선거는 크게는 세계 정세에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작게는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대표가 뽑히느냐에 따라서 경제는 물론이고 환경 정책, 노동 정책, 취약 계층에 대한 정책, 하물며 부동산 정책까지 바뀌고 따라서 우리 살림살이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권호 대구시 선거관리위원회 서기관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표현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2항 알고 계시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고 국가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이죠.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꽃이라고 표현합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와 투표를 의미를 좀 더 살펴보자면 크게 네다섯 가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대표를 선출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성립 근거가 되며 다수의 의사를 결집해 통치 권력을 형성하고 교체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 복수의 정치세력과 다원적 가치의 경쟁을 통해 국민이 선호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며 시민 정치 참여의 핵심 수단이 됩니다. 이와 함께 대화와 설득, 참여와 경쟁, 선출과 승복 등의 과정을 거치는 공동체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라는 의의도 가집니다"


근대에 접어들고 '시민'에 대한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보통선거' 의식 생기기 시작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투표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봉건시대를 지나 근대로 넘어가면서 '시민'에 대한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보통선거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두 가지 사건을 짚어볼 수 있는데요, 먼저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인 명예혁명입니다.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하고 왕위 계승을 정하는 법률인 권리장전을 발표해 국민의 자유로운 청원권, 의원 선거의 자유, 의회에서의 언론 자유의 보장 등을 담았습니다. 이로써 영국의 절대주의 왕정이 막을 내리고 이후 미국의 독립선언, 버지니아 권리장전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1789년부터 1794년까지 일어난 프랑스 혁명 또한 세계 최초의 보통선거로 향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프랑스 혁명의 경우 그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통해서 혁명의 서막이 열렸는데, 같은 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발표되고 투표권을 쟁취하게 되지만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자본가 계급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었어요. 일정 세금을 내는 남성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거든요? 하지만 시민이 중심이 되어 정치나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한 것은 대단한 일이고 진짜 혁명적인 일이죠"

일정 세금을 내야 하는, 그러니까 돈이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꽤 지나서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59년이 지나서야 또 한 번의 혁명인 2월 혁명을 통해서 1848년 12월 세계 최초의 보통선거가 프랑스에서 치러집니다. 하지만 이 보통선거에서도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그러니까 여성이 제외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후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누구나 선거를 할 수 있는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들이 이어졌습니다.


"우린 범법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린 입법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격렬했던 여성 참정권 쟁취 역사
여성 참정권 쟁취의 역사 역시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혁명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영국입니다. 가장 격렬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은 '서프러제트'라고 했는데요, 참정권 Suffrage에 여성형 접미사 -ette가 붙어서 만든 단어입니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주인공은 "우린 범법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린 입법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배경을 살펴보면요, 20세기 초 여성들이 참정권, 즉 선거권을 얻기 위해 서명과 청원을 하는데 매번 의회에서 부결이 되는 거예요. 상황이 바뀌지 않자 당시 여성단체 중 여성사회정치연맹은 과격한 방법으로 운동을 펼쳐 나갔는데요, 주요 거리의 건물 유리창을 박살 낸다거나 전선을 끊거나 정치인의 집을 불태웠어요"

오찬호 사회학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과격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요, 체포와 구금이 잇따랐습니다. 투옥된 운동가들은 단식 투쟁을 벌였다고 해요. 그런데 단식 투쟁을 막기 위해 호스를 이용해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다고 합니다. 음식을 준다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웠겠죠. 반대 여론이 심각해지자 단식하는 죄수를 일단 석방해 감시하다가 다시 잡아 가둘 수 있게 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프러제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메치기, 누르기, 급소 찌르기 등 주짓수를 연마하기도 했다고 해요"

이런 가운데 여성 투표권 획득을 앞당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13년 6월 4일 런던 남부 엡섬 다운스에서 133년 역사의 더비 경마대회가 열리는데, 당시 경마장에는 수많은 관중이 흥분에 가득 차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전통에 따라 국왕인 조지 5세 소유의 말 엔머도 참가를 했는데, 열렬한 환호 속에서 결승점을 앞두고 엔머가 전속력으로 코너를 도는 순간 관중석에서 비명이 쏟아집니다. 한 여성이 엔머 앞으로 뛰어들었고 말에게 짓밟히는 사고가 발생한 겁니다. 그녀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목격자들에 의하면 그 여성이 말 앞에 뛰어들기 전에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이 여성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었습니다. 서프러제트로 여성 참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인데요,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왕의 말 앞에 몸을 던졌지만 다음 날 신문에는 이 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고 '엠마', 즉 말 이름만 기사에 실렸다고 합니다. 신성한 왕의 말이 다쳤다는 기사들만 쏟아진 거죠"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하지만 이 사건은 수도 런던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항의 운동을 일으키는 불씨가 됩니다. 이후 1918년 국민대표법에 의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인정되었고, 1928년에 이르러서야 전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생명까지 바쳐서야 쟁취할 수 있었던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선거권은 왜 중요할까요? 선거권은 결국 인권과 정치적 권리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불평등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선거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흑인들도 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선거의 나라' 미국에서도 여성의 경우 1848년 여성 권리 운동을 시작해서 72년이 지난 1920년이 되어서야 남녀 동등한 선거권을 획득했고 흑인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늦은 1965년이 되어서야 보편적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의 품격', 대구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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